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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 이야기/건축인사이드

일제시대 최상류층의 삶을 담아낸 근대 도시한옥, 영화 <암살> 촬영지 ‘백인제 가옥’


안녕하세요, 한화건설입니다. 북촌은 과거와 현대가 조화를 이룬 매력적인 공간으로 데이트족들의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데요. 이곳에 위치한 '백인제 가옥'은 근대 한옥 양식을 고스란히 보존하고 있어, 마치 시간여행을 하는 것과 같은 멋진 경험을 선사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광복과 관련된 영화 <암살>에 등장하기도 해 더욱 유명세를 타게 되었다고 합니다. 오늘은 '백인제 가옥'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백인제 가옥의 주인들

백인제 가옥은 안국역에서 감사원 방면으로 오르막길 초입 골목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가옥은 북촌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2,460㎡의 대지 위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전통 한옥의 멋스러움을 간직하면서도 새로운 근대성을 수용한 실험적 도시한옥으로서 의미가 큰 건축물로 서울특별시 민속문화재 제22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백인제 가옥의 대문간채


백인제 가옥은 1913년 친일파 한상룡이 처음 건축했습니다. 을사오적 이완용의 외조카로 한성은행 전무였던 한상룡은 친일의 대가로 부여받은 지위와 축적한 자본으로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하며 최상류층의 삶을 누렸습니다. 한상룡은 1906년부터 1912년까지 주변의 가옥 12채를 차례로 매입하며 7년의 준비기간을 거쳐 대저택을 건립합니다. 1913년 집이 완공되었을 때 한상룡의 나이는 33세였습니다. 그러나 1923년 관동대지진의 여파로 한성은행이 부도 위기에 처하자 한상룡은 전 재산을 잃었고 집 소유권은 1928년 한성은행에 넘어갑니다. 한성은행이 소유했던 시절에는 천도교 단체가 가옥을 임차하여 지방에서 상경한 교도들의 숙소 겸 회합 장소로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가옥은 이후 1935 1, 당시 조선중앙일보 부사장이었던 최선익에게 매각됩니다. 개성 출신 청년 부호였던 최선익은 1932 27세의 나이로 중앙일보(1933년 조선중앙일보로 개칭)를 인수하여 민족운동가인 여운형을 사장으로 추대하는 등 민족 언론사에 중요한 자취를 남긴 인물입니다. 최선익은 집을 사들인 후 지금의 출입문이 있는 95번지를 매입하여 출입문을 새로 내고 기존의 출입구 영역을 분할해 대지의 형태를 바꾸고 현재의 규모로 축소시킵니다


▲백인제 가옥의 마지막 주인인 백인제 박사(뒷줄 왼쪽에서 5번째). 서재필 박사(앞줄 오른쪽에서 3번째) 귀국 직후 가옥에서 찍은 사진. 앞줄 왼쪽에서 2번째는 춘원 이광수.


1944년 이후 가옥은 백인제의 소유가 됩니다. 백인제는 백병원 설립자로 당시 조선팔도 최고의 외과의사로 명성을 날렸습니다. 집에 대한 애정이 각별했던 그였지만 이 집에서 오래 살지 못했습니다. 6·25한국전쟁 당시 납북됐기 때문입니다. 1968년부터는 부인 최경진 씨가 이 집에 살아오다 2009년 서울시가 최 씨로부터 가옥을 매입해 20151118, 역사가옥박물관으로 일반에게 개방했습니다


백인제 가옥의 역사

△1913 7 3 완공 후 한상룡(친일 실업가) 거주          1928 6 29 : 한성은행 소유권 이전

1935 1 29일 최선익(언론인)으로 소유권 이전        1944 9 1 : 백인제(백병원 설립자)로 소유권 이전

1977 3 17일 서울특별시 민속문화재 제22호 지정   2009 11 30 : 서울특별시로 소유권 이전

2015 11 18일 역사가옥박물관으로 개관



백인제 가옥의 구조

백인제 가옥은 사랑채를 중심으로 안채와 넓은 정원인 사랑마당이 자리하고, 가장 높은 곳에는 별당채가 들어서 있습니다. 각 공간별로 가옥 구조를 살펴보겠습니다.

  

(1)사랑채와 사랑마당

사랑채는 백인제 가옥의 중심입니다. 사랑채는 자형 평면으로 사랑방 2, 대청 2.5, 앞뒤퇴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북쪽으로는 반칸폭의 퇴를 건너 1칸 크기의 작은방이 안채 건넌방과의 사이에 있는데, 이 방은 침방입니다. 사랑채는 남북으로 뻗은 익랑을 가진 구조로 북측 익랑의 1층엔 안채에 딸린 건넌방이 있고 2층엔 사랑채의 내밀한 공간인 다다미방이 있습니다.


▲백인제 가옥의 중심인 사랑채


사랑중문에 들어서면 사랑채를 감싸고 있는 사랑마당입니다정원인 이곳은 한상룡 거주 당시 사랑채와 함께 연회장으로 자주 사용되었습니다데라우치 총독을 비롯해 미국의 석유재벌 록펠러 2세도 이곳에서 연회를 즐긴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한상룡은 이곳의 조경에 각별한 정성을 쏟았는데 수년에 걸쳐 갖가지 수입목을 사들이고 꽃을 심었다고 합니다.

 

▲한상룡이 연회장으로 주요 사용했던 사랑마당


(2)안채

가족들이 생활하는 공간인 안채는 전체적으로 서울지방형인 ㄱ자 평면을 따르고 있습니다. 방을 중심으로 안방대청을 갖추고 있으며 그 너머에는 건넌방이 있고 꺾인 익랑에는 아랫방이 있습니다. 안채 내부는 부엌, 안방, 대청, 건넌방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모두 남향으로 자형으로 배치되어 있습니다. 부엌 쪽방에는 다락방이 있는데 행랑채 다락방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안채는 각 방마다 대청을 부속시켜 영역화시키고 이들을 연결시키는 실내복도에 목문을 두어 구분하고 있는데 당시로서는 매우 독특한 구성입니다. 가족구성원별로 독자적 생활이 가능하도록 했다는 점에서 근대적 특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안채와 안채 마당(위). 안채 내부와 우물마루로 된 바닥


안채 마당에서는 사랑채의 뒷벽인 화방벽(한옥의 바깥벽에 화재를 방지할 목적으로 덧대어 쌓은 벽)을 볼 수 있습니다. 화초담으로 장식된 화방벽은 태극문양과 완자무늬로 꾸몄으며 수부다남(壽富多男, 목숨과 부와 아들을 바란다는 뜻)’이라는 길상문자(좋은 일을 기원하는 의미를 담은 문자)가 새겨져 있습니다


(3)별당채

휴식을 위한 개인공간인 별당채는 가옥의 가장 뒤쪽,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합니다. 다른 공간보다 약 3m 가량 높이 솟아 있습니다. 별당채로 가기 위해서는 뒤뜰의 사랑채 쪽에서 오솔길로 따라 올라가는데 풀과 돌계단, 나무 등이 정성스럽게 꾸며져 있습니다. 별당채에는 사방이 유리로 된 누마루가 있는데 당시 경성 시내가 한 눈에 보이는 전망대의 역할을 했다고 합니다


▲별당채 외부 전경과 내부의 누마루



백인제 가옥의 건축적 특징

백인제 가옥의 특징은 전통 한옥을 근간으로 하되 일본 가옥 요소를 절충했다는 점입니다. 다다미방, 장마루 등이 그렇습니다. 안채의 대청과 툇마루는 모두 전통적인 우물마루로 구성되어 있는 반면 사랑채는 일본식 장마루로 되어 있습니다. 한상룡은 사랑채 2층의 다다미방 및 내부 복도에 장마루를 깔았는데 이는 다분히 정치적인 계산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사랑채로 초대된 일본 고위인사들에게 그냥 다다미만 깔아 일본풍을 흉내만 낸 것이 아니라 바닥까지도 일본식을 적용한 것을 보여주려는 의도였습니다


 

▲사랑채와 안채의 각 공간을 연결하는 복도에는 일본식 장마루가 깔려있다(왼쪽). 당시 최신식 재료였던 붉은 벽돌과 유리창을 사용한 사랑채


또한 한상룡은 ‘압록강에서 뗏목으로 실어온 흑송’으로 이 집을 지었습니다. 흑송은 일본에서 구로마쓰로 불리며 쇼군의 정원수로 쓰일 정도로 일본인이 좋아하는 소나무입니다. 따라서 한상룡은 본인의 저택 건립에 흑송을 사용함으로써 일본 정재계 인사들에게 자신을 어필하고자 했습니다.


가옥은 붉은 벽돌과 유리창을 많이 사용하는 등 건축 당시의 시대적 배경 또한 반영하고 있습니다. 특히 붉은 벽돌은 개화기에 유입된 서양 선교사의 주택이나 양식 건물에 적용된 근대기의 최신 재료였습니다백인제 가옥은 안채와 사랑채가 실내복도로 이어져 있다는 것도 특징적입니다. 전통한옥의 경우 사랑채와 안채를 별동으로 구분합니다. 실내복도가 집안의 긴 동선을 연결해주는 통로의 역할을 하고 있어 문밖으로 나가지 않고도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광복의 울림이 있는 8월을 보내기 전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백인제 가옥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영화 속에 나오는 장소를 찾을 때 느껴지는 특유의 친숙함이 느껴지지만 가옥 곳곳에는 당시 친일부역의 대가로 최상류층의 삶을 살았던 이들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흔적들이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백인제 가옥은 가슴 아픈 우리 역사를 되돌아볼 수 있는 근대 역사 교육의 현장이기도 합니다. 한화건설은 역사적 의미와 건축사적 가치를 지닌 건축 이야기로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백인제 가옥 관람 안내

△관람시간: 화요일~일요일 09:00~18:00(입장마감 17:30)

※ 자유관람 시 관람시간 내에 시설 외부 관람 가능(안채, 사랑채 등 시설 내부 입장 불가)

쉬는 날: 매주 월요일(월요일이 공휴일인 경우 개관), 1 1

관람안내·문의: 02-724-0232, 0200

안내원 해설 관람은 사전 예약제로 운영되며 회당 15명 예약 가능(인터넷, 전화, 현장 방문 접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