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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 이야기/건축인사이드

‘길로 만든 건축’ 인사동 쌈지길의 비밀




안녕하세요. 화건입니다. :)


주말이면 인사동은 골목마다 방문객들로 북적입니다. 전통 음식점도 즐기고 각양각색 공예품도 구경할 수 있는 이곳에 유독 인산인해를 이루는 건축물이 있는데요. 지난 2004년 준공 이후 인사동의 대표적 명소로 자리잡은 쌈지길입니다.


쌈지길의 특징 중 하나는 몇 번을 방문하여도 이 건축물의 외형을 머릿속에 그려보기 어렵단 점입니다. 대신 가운데 위치한 마당을 중심으로 비스듬히 감겨 올라간 길이 떠오를 뿐입니다. 이처럼 많은 이들에게 ‘건물’보다는 ‘길’로서 기억된다는 게 쌈지길만의 매력인데요. 오늘은 인사동 쌈지길에 숨겨진 건축적 비밀을 알아보겠습니다.




■ 쌈지길, 수평적인 인사동길을 수직으로 연결하다



 

관광지로 유명한 쌈지길은 건축적인 면에서도 큰 호평을 받고 있으며, 지난 2013년엔 건축 전문가 100명이 뽑은 한국 최고의 현대건축 3위에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1층의 ‘첫 오름길’에서부터 4층의 ‘네 오름길’까지 자연스럽게 이어진 건물 구조는 통념적인 ‘층’ 개념이 아니라 ‘길’ 개념을 이어갔다는 점에서 독특합니다. 쌈지길을 설계한 최문규 교수는 사람들이 ‘걸을 수 있는 길을 찾아 인사동에 온다는 점’에 착안하여, 인사동의 수평적 골목길을 쌈지길 내부의 수직적 길로 연장하는 데 의미를 뒀다고 합니다. 



 


건물 내부를 살펴보면 500m의 완만한 경사길이 4층까지 비스듬하게 둘러져 있는 형태로서 경사길을 따라 오밀조밀한 가게들이 쭉 늘어서 있습니다. 건물 중앙엔 지붕 대신 ‘ㅁ’자형 마당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구조는 인사동 골목길을 걷던 방문객들이 자연스레 건물 내부로 들어오게끔 이끌며, 아기자기한 가게들을 구경하다 보면 어느새 옥상의 하늘정원에 도착하여 인사동을 한눈에 내려다보게끔 만듭니다. 




■ 쌈지길, 전통을 해석하는 새로운 시각을 담다


 


한편, 쌈지길은 전통적 분위기가 가득한 인사동 속 현대적인 건축물로 자리하고 있지만, 주변 경관과의 이질감 없이 잘 어우러지고 있습니다.


건물 설계 초기엔 한옥 형태로 지어야 한다는 요구도 많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옛 건물의 형태를 무조건적으로 답습하기보다, 시대에 맞는 모습으로 표출 시켜야 전통의 계승 및 발전이 가능하다고 생각한 건축가의 의견에 따라 지금의 모습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이런 건축 의도를 잘 반영한 요소가 바로 기울어진 바닥을 의미하는 ‘램프(ramp)’ 인데요. 뒤틀린 마름모꼴의 마당을 둘러싼 램프의 길이는 모두 제각각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길이가 긴 북서쪽 램프에서 마당의 좁아지는 쪽을 바라보면 원근법적 효과로 인해 공간이 깊고 커 보이고, 반대편의 램프에서 바라본 공간은 아담하고 편안해 보입니다.



■ 쌈지길, 상업성과 공공성의 경계에 서다


 


쌈지길은 상업성과 공공성, 두 마리 토끼를 잡은 건물이기도 합니다. 방문객들은 경사가 얕은 오름길을 걷다 보면 층을 오른다는 생각을 잊게 되는데요. 계속하여 이어진 길 위에 있다는 느낌은 결과적으로 모든 층의 매장이 1층과 같은 구매력을 갖도록 유도합니다. 실제로 건축가 최문규 교수는 상업건물로서 쌈지길 내 모든 층이 장사가 잘 되길 원했다고 합니다.



 


역설적이게도 이러한 특징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쌈지길을 하나의 건물이 아닌 인사동의 일부로서 여기게 됐는데요. 사용자의 행태에 맞춘 건축구조 덕에 사람들은 이곳을 더 편안하게 여기게 됐고, 공공공간으로 여기는 이들도 많아졌습니다. 즉, 1층부터 4층까지 모든 가계가 상업적으로 활발하게 운영되면서 물건을 사지 않는 방문객까지 편안히 즐길 수 있는 공간이 된 것입니다.

 





독특한 형태 속에 숨어있는 의미를 알고 나니 ‘쌈지길’이 더 특별해보이지 않나요? 건축 구조로 인해 사용자의 소비 행동이 달라지고, 더 나아가 사회적 의미까지 창출할 수 있단 사실이 무척 흥미롭습니다. 앞으로 인사동 쌈지길에 들르실 일이 있다면 갖가지 소품을 구경하는 재미뿐만 아니라 건물 곳곳의 의미를 찾아보는 재미까지 느껴보시길 바랍니다.


한화건설은 다음에도 재미있는 건축물 이야기로 찾아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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